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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봄 통권 제 46권 1호
눈과 코끼리의 상아 - 언어의 정서적인 측면과 낱말의 선택 - 전무용

오래 전에, 성서번역학에서는 꽤 저명한 나이다(Nida)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번역자들을 위한 언어학 특강을 일 주일동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 둘쨋날이나 셋쨋날 쯤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강의 시간에, 나이다 선생님 책상 위에, 여러 가지 종류의 컵과 글라스들이 십여 가지 이상 놓여 있었습니다. 그 컵들을 두고 한국어로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물으셨습니다. 번역자들은 “잔, 종지, 깍정이, 물사발, 물동이, 대접, 유리 그릇” 등등 여러 가지 말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잔(盞)”이라는 말도 한자어였습니다. 한자어에서 온 이 말도 빼고 나면, 그 여러 가지 컵들을 구분하여 부를 수 있는 우리말은 없었습니다. “유리 사발 깍정이” 정도로 부를 수 있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이 말 정도로만 가지고는, 우리 눈앞에 있는 많은 종류의 물 컵들을 표현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글라스”를 번역해 주려면 어쩔 수 없이 “(목이 가늘고 긴 유리 포도주) 그릇”과 같이, 길게 그 그릇을 설명하는 말을 덧붙여서 번역해 주어야 합니다. 이 말들은 용도를 나타내는 말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라는 말과, 재료를 나타내는 “유리(로 만든) 그릇”이라는 말과, “목이 가늘고 길다”는 그릇 모양을 묘사해 주는 말들을 첨가하여, “글라스”라는 영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잔”이라는 말을 쓴다고 하여도, “(목이 가늘고 긴 유리 포도주) 잔”과 같이, 많은 말들을 첨가 하지 않고는 제대로 그 의미를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코끼리 상아 같이 희다

열대 지방의 언어로 “눈과 같이 희다”는 말을 번역할 때에, “코끼리 상아 같이 희다”는 말로 바꾸어서 번역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눈”을 가리키는 말도 없고, 사람들이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이러한 경우에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그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인 혜택을 입어서 텔레비전이나 사진을 통해서 눈을 보고, 또는 직접 추운 지방에 가서 “눈”이라는 사물도 보고, 외국어로 그 사물을 뭐라고 부르는지도 알게 되었을 때에, “스노우와 같이 희다” 정도로 그 번역문을 고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친 번역문의 호소력이나 설득력 또는 공감대는 삶 속에서 늘 보고 겪었던 “코끼리의 상아” 쪽보다 훨씬 적을 수도 있습니다.

 떡, 빵 논쟁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개정하여 개정판을 만들 때에 번역 감수위원들이 퍽 고심을 하였던 낱말 가운데 하나가 “떡”과 “빵”입니다. 이제까지 읽어 오던 「개역한글판 성경」에서는 “떡”이라고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빵”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떡과 빵은 비슷한 음식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개떡”이라고 하던 떡처럼 밀기울로 만든 것도 있지만, 대개 우리 나라의 떡은, 주로 쌀로 만들고, 간식 또는 대용식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반면에 빵은 주로 밀가루로 만듭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빵은 주식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일반적으로, 간식의 성격이 강하고,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면 (1) 부분은 “주식이 되는 곡물을 가루로 빻아서 만든 음식으로서, 유대인들의 음식과 일대 일로 대응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전통적인 우리 음식’”이라는 점에서, (2) 부분은 각기 “그 문화권의 ‘주식’의 하나라는 점”에서, (3) 부분은 ‘만드는 법과 재료’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상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빵”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 가운데 하나는 효소를 넣었는지 넣지 않았는지 하는 것입니다. 밀가루 반죽에 효소를 넣어서 구운 것은 모두 빵이고, 효소를 넣지 않고 구운 것은 모두 과자류입니다. 그런데 이천 년 전 유대인의 빵 가운데에는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아직 거의 대부분 유대인들의 이 음식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빵집에서 볼 수 있는 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효소를 넣어서 구워내는 음식인 “빵”이라는 말로, 이천 년 전의 유대인들의 효소를 넣지 않고 구운 그 음식을 나타낼 수 있는지도 약간은 문제입니다.

 말이 주는 느낌과 우리의 경험

한국 기독교가 “예수님이 떡을 떼시는 것”을 본 지는 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빵”이라는 말이 우리말에 없었으니, “떡”이 의심할 여지없이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이 떡을 떼시는 광경만 생각해도 가슴이 짜르르 하는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빵은 고려당이나 뉴욕제과나 가나안 제과나 이런 이름을 가진 아주 현대적인 분위기 속에 있는것 이거나, 중고등학교 시절,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던 시절에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또는 군대 매점에서 호주머니의 푼돈을 털어 간식으로 사먹던 것들입니다. 정서적으로 이러하므로, “빵”이라는 낱말은 아무런 종교적인 느낌을 주지 못합니다. 이천 년 전의 예수님과 우리들 일상의 경험 속에서 만났던 빵과는 도무지 잘 연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성경 속의 “떡”을 “빵”으로 바꾸면, 그 본문 속에서 정말 아무런 종교적인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차원의 문제는, 번역 언어의 문제가 단지 그 말의 의미와 지칭 대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사회적인 경험과 독자들의 정서적인 측면까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한국 교회의 성찬식 때 카스텔라나 기타 빵을 만들어 쓴 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에 따라 형편은 다를 것입니다. 지금도 떡을 쓰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찬식 때 빵을 경험해 온 세대에게는 “예수님이 빵을 떼시는 것”이 아무런 이질감이나 어색함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빵이 간식이 아니라 그들의 주식이었다는 점을 중시해서, 이 말을 “밥”이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것은 “눈처럼 흰”이라는 본문을 “코끼리의 상아처럼 흰”으로 번역했던 이들의 고민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의견도 얼마쯤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번역에서 이 의견이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문제가 “사전상의 의미” 밖의 “느낌의 영역”에 있기 때문입니다. “떡”이라는 말이 “쌀로 만든 것, 주식의 대체용 또는 별식”이라는 점 때문에 원어가 가리키는 “이천 년 전의 유대인들의 음식”을 가리키는 번역어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여전히 “빵”이라는 말(더구나 외래어)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료의 측면에서 보면 “떡”보다는 “빵”이 가깝고, 그 때의 그 음식을 눈 앞에 두고 이것을 떡이라 할 것인지 빵이라 할 것인지를 물으면 “빵”이라고 대답할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의 그림처럼, 어떻든 번역되기 이전의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우리말은 없습니다. 모든 말이 부분적인 동질성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측면에 더 강조점을 둘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어느 한 쪽을 취하면 나머지는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코끼리의 상아”와 “스노우” 가운데에서 어느 쪽을 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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