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온 이후로 죽 말이 없다. 평소와 같으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재잘거리던 아이가 입술을 다문 채 자꾸만 말을 걸어도 그날 따라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아니 애가 왜 이러나 드디어 사춘기가 왔나’싶어 이번에는 조심스레 “아빠도 학교 다닐 때에 무슨 일이 있으면 그런 표정이 되던데” 하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누가 나를 발로 찼어요. 엉엉엉…” 자초지종을 들으니 같은 반 남자아이가 하교 길에 자기를 막 좇아오더니 발로 세게 찼다는 것이다. ‘혹시 우리 아이가 ‘왕따’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네 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딸 가진 사람들의 민감한 신경이 내 안에 곤두서고, 사실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아빠는 빠져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귀한 우리 딸을 발로 찼다는 말에 같은 반 남학생이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태를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거룩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자식이 밖에서 누군가에게 맞고 왔다던가 아니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왔을 때 부모의 심정이 이렇구나…자식이 무엇이관데 이리 부모의 속을 뒤집어 놓는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 이유를 새삼 물으며 나는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500원 짜리 붓펜으로 300원 짜리 예쁜 카드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붓펜을 사용한 이유는 내 마음을 담기에 그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며 예쁜 카드를 선택한 이유는 나는 그 녀석(!)을 사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간이 흐르기 전에, 그들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사랑의 편지, 용서의 편지, 화해의 편지를 써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리라. 나는 우리 아이를 생각하며 또 그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기울여 썼다. 그리고 봉투에 넣어 딸에게 주었다. 자기가 먼저 읽어보더니 얼굴이 밝아진 지혜는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학교로 갔다. 그 날 오후 하교 길에 우연히 그 아이를 봤다. 나는 애를 빵집으로 데려갔고 빵집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
그 다음 주일 아침 그 아이는 빵집에서 약속한 대로 교회에 나왔다. 그 아이가 우리 우리 교회 주일학교에 처음 나오던 날 아침, 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엎드려 기도하시던 주님의 뒷모습과 십자가에 달리신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의 삼일 후의 희망을 가슴에 새겨가며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어느 주일날 아침 그의 할머님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어느 주일날 아침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어느 주일날 아침 그의 외사촌 누나가 우리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들 온 가족 모두 다 우리 교회 등록 성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