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그립고 예루살렘이 보고싶을 때마다 글을 썼다. 성지를 순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이스라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할 때에도 글을 썼다.
새해 첫날(로쉬 핫샤나)이 다가 오거나 대속죄일(욤 키푸르)이 되면, 또는 유월절(펫삭)이나 초막절(숙콧)이나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상기하는 아빕월 아흐렛 날이 되거나, 하만의 유대민족 대학살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는 푸림절이 오면, 이스라엘에 살면서 함께 사귄 사람들과 사귀던 일들이 더욱 생각난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중에는 팔레스틴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들인 사브라들을 비롯하여 유럽 쪽에서 이민 온 아스케나짐 친구들, 스페인 쪽에서 온 스파라딤 친구들, 솔로몬의 후손임을 강조하는 에티오피아 친구들, 아랍인이면서 히브리 대학교에 입학하여 함께 공부하던 아랍 친구들, 역시 아랍 계통의 드루지 친구들 등이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친구들과의 사귐은, 민족 간의 갈등에 시달리는 팔레스틴 지역의 희망적인 미래를 약속해 주는 징조였다. 이스라엘이, 한 편으로는 민족 간의 대립과 갈등에 곤혹을 치루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편으로는 같은 유대인들이라 하더라도 각 종파 간의 대립과 반목도 심하다. 그런데, 한 캠퍼스 안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의 사귐은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수천년 묵은 고질적인 감정 대립을 언젠가는 극복하고 서로 어울려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하였다.
그 곳에서 사는 동안에 나의 견문을 넓혀 준 이들로서는,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고 부르며 또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던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무슬림과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의 공동체, 깊게 사귀지는 못했지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베두인 사람들, 세겜의 그리심산 사마리아 회당의 제사장들, 그리고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세계 각처에서 왔던 일일이 기억조차 할 수는 없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기쁜 시간을 나누었던 여행자들에 관해서도 못 다한 이야기는 또 두고 두고 하기로 하자.
성지를 순례할 계획을 가진 이들이 성지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면, 나는 그들의 관심사에 따라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기후, 거기에 사는 사람들, 방문해야할 역사적인 장소들, 순례해야할 성서 인물들의 발자취, 지난날의 역사적 흔적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나 기념관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것들을 또 글로 적었다.
사해사본과 마소라 본문을 비교하는 본문비평 강의를 준비하다가도, 지루하고 답답해지면, 2천년 동안이나 광야의 동굴 속에 고이 보존되어 온 사본들을 예루살렘의 사해사본 박물관에서 처음으로 보던 때의 그 감격을 글로 적거나, 현지에서 들은 극적인 발견 과정, 또는 숨막힐듯한 입수 과정, 출판의 뒷 이야기 등에 관한 이야기 거리를 모으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나 영화로 만든 것이면 무엇이든 빼놓지 않고 읽었고, 또 보았다. 그 중에서도 엘리 비젤의 『밤』과 『새벽』과 『예루살렘의 거지들』은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밤』은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고, 『새벽』은 독립전쟁 당시의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게릴라가 되어 테러를 자행하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를 진술한 것이고, 『예루살렘의 거지들』은 6일 전쟁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살아나는 대학살의 망령에 몸서리치는 이스라엘의 공포와 전률을 그리고 있다. 토마스 키닐리의 『쉰들러 리스트』는 아우슈비츠 이전의 대학살의 예비적 박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슬픈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반하여, 에릭 시갈의 『사랑의 행적』은 정통파 유대교 내의 정통파와 개혁파와 자유주으파 사이의 갈등과 미움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세속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헐어가는 젊은이들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는 기쁜 이야기이다. 에릭 시걸의 이 소설은 현재의 이스라엘을 무대로 하여 이스라엘의 전통과 풍속과 생활과 신앙을 여실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이스라엘 안내 책자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그 가사들을 번역해 가며 음미하는 것도 나에게는 큰 기쁨과 위로였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서를 한껏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감격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향수가 날이 갈 수록 사무치는 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격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여기에 그 노래 몇 곡을 뽑아 가사를 번역하여 싣는다. 특히 이스라엘 국가인 『희망(하티크바)』는 오래 동안 퍼 고심하여 번역한 것이다. 이렇게도 버역해 보고, 저렇게도 번역해 보고, 여러번 불러보고 또 고치고 하여, 뜻도 충분히 전달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곡에 맞추어 부르기에도 좋도록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서 현재의 번역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이야기』 안에는 성서의 본문이 많이 인용되었다. 성서 본문은 오늘의 독자를 위해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전서 표준새번역』(1993)에서 인용하였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사이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그림을 가끔 집어넣었다. 여기에 실린 그림은 주로 이소정·이지희 자매가 그려준 것이다. 다른 이들의 그림을 사용할 때는 그때 그때마다 끄림 설명을 하는 곳에서 그 출처를 밝혔다. 깨알 같은 작은 글씨만 있는 것 보다는 군데 군데 그림이 있으면 더 인상적일 것이다. 그려 온 것을 보니 사진보다 훨씬 더 정겹다.
컨콜디아사에서 몇 해 전부터 이경배 부장께서 이런 종류의 기행문을 내자고 제안했는데, 그가 그 직책에서 은퇴할 때까지도 그에게서 받은 숙제를 끝내지 못하다가, 최근에는 김준곤 차장이 다시 재촉하여, 늦기는 했지만 겨우 탈고를 하고 보니, 이 책이 나오게 된 공을 컨콜디아사에 돌리고 싶다.
특히 표지 디자인의 윤곽을 결정해준 것에 대하여 김준곤 차장에게 감사하는 바이다. 표지 디자인의 구조는 그가 만들었고, 내용은 저자가 집어넣은 것이다. 앞 뒤 표지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검정 띠에, 다윗의 방패인 흰색 별이 있다. 여기에서 흰색 별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고, 검정 띠는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어둠의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책 전체를 덮고 있는 노란색 바탕은 그들이 추구하는 평화를 색갈로 나타내 보고자 한 것이다. 아홉 개의 스크린에는
1)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을 상기시키는, 이집트의 벽화 중에서 “벽돌 찍는 노예들”,
2)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럽에서 당한 6백만 유대인 학살을 상기시키는 야드 바솀의 조각
“아버지와 아이들”,
3) 흩어진 유대인들의 마음이 한 곳으로 모아지는 통곡의 벽,
4) 성서의 언어였고, 신생 이스라엘의 국어인 히브리어 알파벳,
5)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의 대결책을 시각화한 사해사본 박물관의 아키텍추어,
6) 히브리어로 쓰여진 성서를 대표하는 사해사본 이사야 (1QIsaa),
7) 기독교의 시작을 알리는 예수의 탄생을 상기시키는 베들레헴의 구유교회 입구 좁은 문,
8) 예수께서 무리에게 먹이셨던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
9)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완성과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을 말해주는 십자가의 길 비아돌로
로자 이정표가 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 손도 수금 타는 재주를 잊을 것이다.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시편 137:5-6)
1995년 9월 25일
로쉬 핫샤나 (유대력의 새해 첫날)
민 영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