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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10월 11일, 오와리(尾張)미를 싣고 에도(江戶)를 향해 가기 위해 토바(鳥羽)항을 출발한 센고쿠(千石)선 順丸은, 원주탄에서 조난을 당하여 14개월 간의 표류 끝에 북미 서해안의 블래터리 곶까지 떠내려갔다. 1834년 1월의 일이었다. 생존자는 선원 14명 가운데, 이와요시(岩吉:28세로 추정), 히사요시(久吉:14세로 추정), 오토요시(音吉:14세로 추정)의 3인 뿐이었다.
그들은 미국 원주민에게 붙들려 노예와 같이 혹사당하다가, 허드슨만 회사의 지배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송환되기 위하여 런던, 희망봉을 거쳐 1835년 12월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3인은 영국 상무청의 보호 하에 있게 되었고, 주석 통역관이자 네덜란드 전도협회의 프러시아 출신 선교사 칼 귀츨라프의 집에 그대로 체류하게 되었다.
한편, 귀츨라프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일본인들을 위해 성서를 그들의 언어로 읽게 해달라는 기도를 평소부터 하고 있었다. 귀츨라프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생각하고, 이듬해 3월 싱가포르에 있었던 미국성서공회의 블리검에게 편지를 썼다. 이 3인의 일본인을 만난 것은 하늘이 내려준 호기입니다.라고 쓰고는, 비용 부담을 요청했다. 그 결과, 미국성서공회는 연간 72달러를 지불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번역은 1835년 12월부터 시작하여 이듬해 11월에 완성하였다. 이 성서는 현존하는 최초의 일본어성서로서 유명한 귀츨라프역 요한전 요한 서간이다.
일본 선교를 꿈꾸었던 귀츨라프도, 그리고 일본으로 귀국할 것을 노심초사 고대하고 있던 세 남자도, 결국 이 성서를 일본으로 전달하지는 못하였다. 1859년 헵본이 이 성서를 가지고 일본에 온 것은 실로 번역이 완성되고 나서 23년이나 지난 후, 곧 개국 이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