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교역자나 평신도를 가릴 것 없이, 교인들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성지에 가 보기를 원한다. 퍽 오래 전 일이지만, 우리 가족이 예루살렘에서 머물던 20년 전에는 성지를 다녀가는 한국인 순례자들은 한 해에 백여 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동안에 연평균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순례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한여름 한창 때는 예루살렘 현지에 우리 나라 안내원이 부족하여 유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동원되어 안내를 맡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성지 방문에는 두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외국 여행길에 개별적으로 성지에 들러서 며칠 머물면서 순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사의 안내를 받아서 단체로, 석 주 정도의 일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로마와 그리스와 터키 등지에 흩어져 있는 성서와 교회사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을 목적지로 하여 두 주나 넉 주 정도 일정 기간 그곳에 머물면서 히브리대학교나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소가 실시하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혼자서 또는 친구 몇몇이서 한 두 주일 정도로 성지를 찾는 이들은 사전 준비가 잘되어 있을수록 더 효과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어디를 방문하여 무엇을 볼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서 어떻게 숙박을 하며, 어떤 교통 수단을 이용할 것인지 하는 것 등을 출발 전에 충분히 생각한 다음 여행길에 올라야 한다. 먼저 다녀 온 이들의 경험을 듣는 일도 중요하다. 우리말로 된 이스라엘 안내 책자도 넉넉하게 나와 있다.1)
급하게 다녀가는 경우라도 체류 기간을 닷새 정도는 잡아야 한다. 여행에 사흘이나 나흘, 기념품을 사고, 유대인이나 아랍 사람이나 현지의 교민을 만나 대화하며 쉬는 데 하루, 이렇게 잡으면 된다.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이 흔히들 장소 답사에만 관심을 갖는데,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현지에 사는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저녁 한가한 시간에 대학 기숙사의 휴게실을 방문 한다던가, YMCA의 청년 프로그램들 중에서 흥미 있는 어느 하나에 들어가 본다던가, 또는 재수가 좋을 경우에는 그곳 학생들의 도보 고적 답사에 끼어 어느 지점까지 같이 걸으며 여행한다든가 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보는 것은 오래 오래 기억될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커피숍에 들어가서 한가하게 물담배나 뻐끔뻐끔 빨고 있는 아랍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것도 인상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역시 여행 도중에 제일 많이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자기와 같은 여행자들일 것이다.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착하다. 모두들 초행길이기 때문에 서로가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여행사나 기독교기관이 주선하는 단체 성지순례도 많다. 여러 곳의 여행 일정을 검토해 보고 자기의 마음에 맞는 대로 선택하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순례 게획이 없다면, 단체 여행에 끼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어떤 기관에서 히브리대학교와 연대하여 학술적인 답사와 순례를 하는 계획하는 것도 생겼다. 신학 대학에 따라서는 아예 성지 순례를 전문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현지에 연락처를 두고 일정 기간마다 순례자들을 모집하여 데리고 가기도 한다.
현지의 발굴 작업 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경우에 거기에 지원을 하여 발굴 교육도 받고 실습도 하고 실제로 발굴에 차여하면서 주말마다 전국을 방부해 볼 수 있다. 학생들에게 권해 보고 싶은 것이다.
휴대품
여름일 경우에는 반바지, 반소매 셔츠 등 간편한 옷들을 가져가면 된다. 그러나 정통파 유대교 지역이나 유대교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무릎과 팔꿈치를 덮는 옷과 어느 종류의 모자든지 모자가 필요하다. 기독교 유적지에 들어갈 때는 모자를 벗도록 되어 있지만, 유대교와 관련된 장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모자나 덮개로 정수리를 가려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할지라도,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모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강렬한 태양 광선은 여행자의 시력을 피곤하게 하므로 색안경도 필요한 휴대품이다. 수영복도 가져갈 수 있으면 좋다. 여름 여행이라 하더라도 가벼운 외투나 스웨터를 준비해야 한다. 밤에는 갑자기 기온이 낮아져서, 예루살렘이나 남쪽 광야의 여름밤은 예상 밖으로 춥다. 그리고 근거리 답사는 주로 도보로 하게 되니까 걷기에 편리한 신을 준비하여야 한다. 카메라와 충분히 쓸만큼의 필름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필름은 현지에서 구입하려면 비싸다. 자기가 늘 보던 성서와 필기 도구, 그리고 이 모든 것 외에 경건한 순례자의 마음까지 준비하게 되면 그만이다.
겨울철에 성지를 찾는 이들은 두터운 외투와 방한모를 마련해야 한다. 중부 산악 지대인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라도 기껏해야 1-2도 안팎이지만, 바람이 심하고, 거기다가 우기이기 때문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날도 많다. 경험에 따르면, 이 기간에는 성지 순례를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 기간 안에 크리스마스가 끼어 있기 때문에 가을 동안 뜸했던 순례자들이 12월 중순부터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들기 시작한다.
비용은 얼마나 드나
비용에 포함되는 것은 왕복 비행기표와 이스라엘 체류비와 순례여행 경비이다. 지난 94년 연말, 이삭 라빈 이스라엘 수상이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우리나라를 다녀 간 이후, 두 나라 사이가 더 가까워져서, 두 나라 사이에 여행자들이 비자 없이 드나들 수 있고, 이제 곧 서울 텔아비브 간에 직행 비행기가 뜬다고 하니까, 여행이 과거보다는 훨신 더 편리해지고 저렴해질 것 같다. 개별적으로 갈 경우 하루에 드는 경비는, 최근 여행자들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관광비, 기념품 구입비, 잡비, 숙식비 등을 합쳐 평균 미화 150 불을 잡으면 된다. 숙박 시설은 하루 20불에서 200불까지 각자의 형편에 따라 교회들이 직영하는 여관에서 고급 관광 호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히브리 대학교나,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이 실시하는 여름학교를 선택한다면 아주 경제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에서 여는 한달 간의 여름학교의 경우, 숙박비, 국내 답사 여비, 수강료와 안내 비용까지 다 합쳐도 국내의 여행사가 주관하는 석 주 여행 경비 밖에 들지 않는다.
젊은 대학생들이 유스호스텔이나 민박을 이용하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여행할 경우에는 하루 경비가 20-30불이면 될 정도로 파격적으로 값싼 여행을 할 수도 있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먼 곳은 차를 얻어 타고 다니고, 잠은 대학 기숙사에 들러 침낭에서 자면, 이것이 소위 무전여행이다. 이런 젊은이들도 많이 눈에 뜨인다.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 여름학교
목회자들과 대학원 재학생들의 경우라면,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서 열리는 예루살렘의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 (Ecumenical Institute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의 여름 학교가 추천할만 하다. 주로 다음과 같은 과목을 이수하게 되고 거기에 따른 여행을 하게 된다. 학점이 필요한 재학생들의 경우에는 별도의 과제물을 더 받게 된다. 최근 10여년 동안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 동문회의 소식을 못듣고 있어서 여름학교 프로그램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소개하는 프로그람 내용은 성지의 학술적 답사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통찰을 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안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이스라엘의 신앙: 어제와 오늘”. 이 과목의 강의는 80년대까지 네게브의 벤구리온 대학교 교수이며, 예루살렘의 헤셀 연구소 소장인 랍비 핑카스하코헨 펠리 박사가 맡아 오고 있다. 이 강의와 관련하여 답사하게 되는 곳은 남자 조상들(아브라함,이삭,야곱)과 그들의 여자 조상들(사라,리브가,레아)의 무덤이 있는 막벨라 동굴, 브알세바 일대, 유대교 회당, 유대교 신학교, 예루살렘 구시가지와 그 곳의 여러 발굴 현장, 크네세트(이스라엘 국회 의사당), 야드바?(나치 6백만 학살을 기억하는 박물관), 그리고 종교인들로 구성된 키부츠(집단농장) 등이다.
“성전 시대부터 회당 시대까지”. 여기에서는 특히 유대인 역사가의 눈으로 보는 신약성서 배경 연구가 흥미롭다. 강사는 히브리 대학교 교수단에서 온다. 이 강의와 관련된 현지답사 대상지는 다음과 같다. 예루살렘 신시가지 홀리렌드 호텔에 있는 주후 66년의 예루살렘 시가지 모형 (50:1로 축소된 것), 베다니, 예루살렘 성전 일대, 비아돌로로자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이르는 십자가 길)와 그 일대의 다른 기독교 유적지들.
“성서의 역사지리”. 유사이래 팔레스틴 지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배우는 과목이다. 이 강의와 관련된 답사 지역은 팔레스틴의 구석 구석이다. 성서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들은 이 때 거의 모두 방문하게 된다.
“중동 고대 교회 방문과 그 지도자들과 면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다음, 예루살렘 신·구 시가지에 산재한 여러 교파들의 교회를 방문하여,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고, 그곳 지도자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대화의 진전에 따라 놀라운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기회이다.
여름학교 기간에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이다. 이밖에도, 연구원 내에서 베네딕트 수도사들과 함께 가지는 예배와 명상과 기도의 시간은 언제나 공개되어 있다.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은, 북쪽으로는 예루살렘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남쪽으로는 베들레헴이 발 밑에 와 닿는 탄투르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태고 때부터 그러했을 성싶게 메마른 유다 광야가 황량하게 보이고, 그 너머로 사해가 보인다. 예루살렘 중심가에서 연구원까지는 버스로 15-20 분이면 가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35 에이커에 달하는 아름다운 정원 캠퍼스, 아담한 채플, 예루살렘에서도 신학 분야의 각종 정기 간행물을 약 3500여 종 보유한 것으로 이름난 도서관, 개인들을 위한 50 개의 크고 작은 객실과 가족들을 위한 10채의 아파트 등은 완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잠깐 에큐메니칼 신학연구원을 소개하자면, 이 기관은 안식년을 맞이한 교수들이나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는 곳이다. 자체 내의 프로그램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주로 개인들의 연구를 돕는다. 세계 도처에서 오는 학자들과 명사들을 만나서 한 학기(4개월)나 두 학기(8개월) 동안 사귈 수 있다. 희랍 정통교회, 개신교, 카톨릭 등 세 교회의 3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학사 위원회가 있다. 1963년부터 설립 계획이 되어, 문을 연 것은 1971년 가을 학기부터였다. 학사 일정은 1년, 두 학기이다. 이 기간 동안의 공식 언어는 영어·독어·불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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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용기 편저, 『이스라엘의 시련과 영광』(창진사, 1977); 류태영, 『이스라엘 민족정신의 뿌리』(아가페 출판사, 1981); _______, 『이스라엘 국민정신과 교육』(이스라엘 문화연구원, 1986); 박수자,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역사와 지리』(도서출판 양서각, 1986); 이재은, 『이스라엘 순례를 위한 길잡이 신앙의 본향을 찾아서』(기독교방송, 1993); 정양모, 이영헌 공저, 『이스라엘 성지, 어제와 오늘』(생활성서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