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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제1부 그 땅의 사람들
땅, 비, 바람

성서에 기록된 내용과 관련된 장소는 광활한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가 연출된 무대는 동쪽으로는 페르시아만의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는 오늘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이른다. 북쪽으로는 터키와 이라크, 그리고 남부 러시아까지 이르고, 남쪽으로는 오늘의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그러나 성지의 핵심은 아무래도 ‘이스라엘 땅’(에레츠 이스라엘, 삼상 13:19; 대상 22:2; 대하 2:17)이다. 족장들이 유랑하고 여호수아가 호령하던 곳, 다윗이 다스리고 아모스가 외치던 곳, 예수께서 설교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던 곳,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이 엠마오까지 걸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아침 식사를 마련해 주신 곳 등이 다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땅’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사용되지만, 그 땅의 범위와 경계는 역사적으로 늘 바뀌어 왔다. 오늘날의 이스라엘도 아직까지 일정한 국경선이 확정되지 않은 나라이다. 다윗왕 때 요압이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삼하 24:2) 조사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개략적 경계가 암시되어 있다. 단은 헐몬산 밑에 위치한 곳으로서 성서 시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도시이고, 브엘세바는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였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는 지도상의 직선거리가 약 240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의 이스라엘 땅은 점령 지역(6일전쟁 결과 장악하게 된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브엘세바를 훨씬 지나서 홍해 아카바만의 에일랏에 이른다. 길이가 대략 남북으로 400 킬로미터이고 넓이는 동서로 대략 50-100 킬로미터에 이르는 좁고 긴 지형이다. 그러나 세계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도에 그 이름을 써넣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작은 땅이다.

우리 가족은 예루살렘시와 유다 광야가 맞닿는 지점에서 5년(1973-1977년)을 살았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이 유다 광야를 거쳐와서 처음으로 부딪치는 건물이 바로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동쪽 벽이었다. 성지를 방문하는 이들이 올 때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곧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곤 했다. 거기에서 보면 서쪽으로는 옛 예루살렘 성과 20세기 현대 도시 새 예루살렘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동쪽으로는 원시의 광야가 작렬하는 태양볕 밑에서 불타고 있다. 그 너머에는 엷게 푸른 사해 바다가, 그리고 그 너머로는 불그스름한 모압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태양열이 작렬하는 오후면 유다 광야는 누런 황금빛을 낸다. 건조한 공기, 숨막힐 듯한 더위, 풀을 말라 죽여 버리는 뜨거운 바람, 바로 여기가 광야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 불모의 땅과 기후와 더불어 생사를 건 투쟁을 해 오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일컬어 구약성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을까? 그것도 스무번 이상씩이나(출 3:8, 13:5, 33:3; 레 20:24; 민 14:8; 신 6:3, 11:9, 26:9, 27:3; 수 5:6; 렘 11:5, 32:22; 겔 20:6,15) 말이다! 이 표현은, 아마도 본래는,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이 둘러보았던 남쪽의 헤브론 부근(민 13:17-33)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 같다고들 한다. 고대의 헤브론 부근은 여러 세기 동안 비옥한 곳이었다. 따라서 광야에서만 살아오던 사람들의 눈에는 그만한 곳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부를 만큼 좋게 보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광야에서 고생하던 때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을 사모하면서 이집트땅을 가리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며 회상한 일도 있다(민 16: 13-14). 이러한 표현은 아마도 처음에는 이스라엘 땅의 비옥한 일부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대부분 돌짝밭이고 건조해서 경작하기 어려운 이스라엘 땅 전체에 적용된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페르샤만에서 시작하여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까지 갔다가 다시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내려와 나일강 삼각주에 이르는 ‘초생달 모양의 옥토지’(fertile crescent)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골란 고원 지대, 이스르엘 평야, 지중해 연안의 해안 평야 등이 이 옥토 지대에 속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을 전체적으로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기 보다는, 이사야가 묘사한 것처럼,


         암사자와 수사자가 울부짖는 땅,
         독사와 날아다니는 불뱀이 날뛰는 땅,
         위험하고 곤고한 땅 (사 30:6)


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곳이다.


계절은 건조기인 여름과 우기인 겨울로 나뉜다. 봄이나 가을은 분명치 않다. 더욱이 ‘스티브’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그 뜻이 ‘겨울’인지 ‘가을’인지 애매하다. 아가서 2장 11절의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에서는 겨울을 뜻하지만 현대 히브리에서는 가을을 뜻하기도 한다. 우기는 10월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본격적인 장마는 2월경이다. 4월이면 우기가 끝나고, 봄인가 하면 곧 여름이 되어 버린다. 이스라엘 땅이 좁기는 하지만 지세가 다양하기 때문에 해발고도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심하다. 서부 해안 지대(악고 평원, 이스르엘 계곡, 샤론 평원, 블레셋 해안, 스불라)는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다. 예를 들면, 그 부근의 중심 도시 텔아비브(성서의 욥바)에서는 사람들이 겨울에도 외투 없이 나다니며, 건물마다 한여름을 위한 냉방장치는 되어 있어도 겨울을 대비한 난방장치는 없다. 그러나 중부 산악 지대(사마리아,유다 산지)는 해발고도가 600-900 미터로 겨울이면 비바람이 매우 심하여 방한모가 달린 두터운 외투를 입어야만 한다.

중부 산악 지대의 대표적 도시 예루살렘에서는 여름을 위한 냉방장치는 필요 없으나 겨울을 대비한 난방시설은 꼭 필요하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지역에는 우기에 한 두 번은 눈이 내린다. 그 때마다 해안 평야 지대나 남쪽 헤브론이나 브엘세바 등지에 사는 사람들이 눈 구경을 하러 오곤 했다.

1973년 1월 어느 날 예루살렘에 폭설이 내렸다. 밤새도록 쌓인 눈에 가로수의 가지들이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 쓰러지기도 했다. 오전 내내 함박눈은 그치지 않았다. 교통이 두절되었기 때문에 기숙사촌의 슈퍼마켓이 열리지 않았다. 아침마다 빵과 치즈와 우유를 사다 먹었기 때문에 그날 아침은 굶어야 했다. 정오쯤 되어 겨우 눈이 멎었다. 먹을 것을 사려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시내 쪽으로 가다가 캠퍼스 안에 있는 ‘키오스크’(학교 매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침을 굶은 기숙사 친구들이 과자를 사 먹으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나도 뒤로 가서 줄을 섰다. 매점의 물건은 바닥이 드러나려고 하는데 아직도 내 차례는 멀었다. 게다가 새치기하는 녀석들은 어디에나 있다. 뒷줄에서 기다리던 나는 앞에다 대고 크게 소리를 쳤다. “아도니 (여보시오)! 내게도 그 과자 하나 주시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엉겁결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서투른 히브리어는 “아도나이(주님)! 내게도 그 과자 하나 주시오” 였다. 같은 히브리어 자음을 ‘아도나이’라고 발음하면 야훼 하나님을 가리키는 ‘주님’이란 뜻이 되고, ‘아도니’라고 발음하면 성인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 된다. ‘아도니’는 문맥에 따라 ‘여보시오’ ‘아저씨’ ‘주인 어른’ 등의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아도니’의 문자적 의미는 ‘나의 주인’이다. 어쨌든 이스라엘 녀석들이 기절초풍 하는 바람에 그 날 아침 한 이방인은 겨우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릎까지 쌓인 눈도 삽시간에 녹아 버리는 것이 그곳의 특징이다. 그래서 눈이 그치고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 곳곳에 홍수 사태가 난다. 우리가 거기에 있는 동안 매년 눈이 왔으나, 첫 해(1973년) 겨울에 왔던 눈만큼 그렇게 큰 눈이 온 적은 없다. 눈이 오는 날은 학교, 관공서, 슈퍼마켓이 자동적으로 닫히고 버스마저도 안 다닌다. 자연히 즐거운 휴일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오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눈이 그치면 또 장마가 계속된다. 예루살렘의 겨울비는 불과 수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내리고 만다. 이 강우량은 런던의 일년 강우량과 같다고 한다. 단단하고 마른 땅을 폭우가 휩쓸고 흘러, 빗물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지형이 이 지역 지형의 특징을 이룰 정도다. 일년 내내 말라 있어서 광야를 횡단하는 길로 사용되는 와디 역시 이 기간에는 홍수로 범람한다.


         사람이 없는 땅,
         인기척이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는 이가 누구냐?
         메마른 거친 땅을 적시며,
         굳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게 하는 이가 누구냐? (욥 38:26-27)


이렇게 성서에서 읽던 말을 이 곳에서는 땅에서 직접 읽는다.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성서는 그 땅이 이집트 땅과 어떻게 다른지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너희가 들어가 차지할 땅은, 너희가 나온 이집트 땅과는 다르다. 이집트에서는 채소밭에

         물을 줄 때처럼, 씨를 뿌린 뒤에 발로 물을 댔지만,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는 산과 

         골짜기가 많아서,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댄다. (신 11:10-11)


이처럼 이스라엘 땅은 이집트 땅과 달리 관개 시설이 불가능한 땅이었다. 언제나 가뭄과 흉년과 그것으로 인한 기근이 예상되기 때문에, 살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참으로 살기 어려운 땅이다. 다만 믿음을 가진 백성만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선하심을 힘입어 번영할 수 있는 땅이다.

요단계곡(갈릴리 호수, 요단 강, 사해, 소돔)은 바다 수면보다 낮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소돔은 바다 수면보다 무려 400미터나 낮아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은 여름 겨울 없이 낮에는 덥다. 특히 사해에서는 관광객들이 일년 내내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이곳은 대단히 건조한 지역이다. 사해 서북쪽 쿰란 지역의 어느 굴에 묻혀 있던 성서 사본들이 2.000여 년 동안이나 썩지 않고 있었을 정도로 건조한 곳이다.

아굴이 그의 잠언에서, “기이한 일이 셋,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넷이 있으니”(잠 30:18)라고 말한 것처럼, 수천 년을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아직도 그 원인과 결과를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환절기(4-6월과 9-10월)에 저 아프리카 사막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불어닥치는 뜨겁고 건조하고 강한 열풍이다. 이 열풍을 현지에서는 아랍어로 ‘샤르키예’(Sharqiyyeh: ‘동풍’이라는 뜻, 여기서 영어 Siricco가 나옴) 또는 ‘캄신’(Khamsin)이라고 한다. 한번 불기 시작하면 하루나 이틀, 혹은 사오일 동안이나 계속되기도 한다. 이런 열풍이 불어닥치면 들판의 식물들이 다 말라 비틀어지기 때문에 들판이 황량하게 된다. 피해를 입는 것은 들풀이나 들꽃만이 아니다. 인체에도 각종 피부병, 눈병, 기관지염, 열병, 그리고 이비인후과 계통의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 이 바람이 때로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가 하는 것을 요나서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해가 뜨자, 하나님이 찌는 듯이 뜨거운 동풍을 마련하셨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

         리 쬐니, 그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하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

         이 더 낫겠습니다.”(욘 4:8)


이 열풍이 얼마나 심한지 열풍이 지나간 다음 피아노 조율을 다시 해야만 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이런 열풍이 한바탕 지나고 나면 들풀이나 들꽃만이 아니라 인간들도 녹초가 되고 만다. 이런 열풍을 겪고 나면, 이사야의 한 예언이 몸으로 느껴진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을 뿐이다.
         주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사 4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