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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제1부 그 땅의 사람들
이스라엘의 국어

?? ?  ?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배우는 나라, 그곳이 이스라엘이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랄리아, 첵코스로바키아, 폴란드, 스페인, 남미의 여러 나라 등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살다 온 그 나라 말로 대화를 한다.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 가운데는 이디쉬(Yiddish)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이디쉬란 독일어에 슬라브어와 히브리어를 섞어 만들고, 히브리 문자를 이용해서 쓰는 말로서,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말이다. 기손(E. Kishon)의 ‘이스라엘’이라는 시 가운데, “여기에서는 사람들이 히브리어로 쓰고 영어로 읽고 이디쉬로 말한다” 라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많은 수가 몇 개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한다. 익살맞은 한 팔레스틴 토박이(싸브라: 이스라엘 땅에서 난 유대인 젊은이들)는 세계에서 문맹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지금 이스라엘 국민은 세계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 땅에 돌아와 살아도 제 나라 말도 제 나라 글도 모르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이다.

내가 히브리대학교에 유학할 당시 1970년대 초에, 이민해 오는 이들과 더불어, 매년 여름마다 수천 명씩 해외 유대인 자녀들이 조국과 모국어를 배우러 이스라엘로 왔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느 마을에나 울판(Ulpan)이라고 부르는 현대 히브리어 강습소가 있었는데, 예루살렘만 해도 이 울판 수가 서울의 재수생을 위한 학원 수만큼이나 많이 있었다.


사무실이나 공공 기관에서, 방문객이 새로 이민해 온 사람처럼 보이거나 외국인일 경우, 사무원이 그 방문객에게 어느 나라 말로 말할 것인가 묻는 경우가 흔하다. 이스라엘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한번은 아내가 병원에서 퍽 무안을 당했던 것 같다. 짧은 히브리어로 말을 걸었더니, 답답해진 간호원이 “영어 하세요? 불어 하세요? 독일어? 스페인어? 소련어 할 줄 알아요?”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히브리어가 서투른 사람이면 어느 곳에서나 친절하게 당하는 질문이다. 상대편이 쓰는 언어로 상대해 주겠다는 아량이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에도 능통하지 못할 경우에는 부끄럽고 난처하다. 그런 일을 당한 뒤부터 아내는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유쾌하지 않은 그러한 친절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서, “그래, 너는 한국말 할 줄 아냐? 중국어 할 줄 알어? 일본어는? 몽골어는? 월남어 할 줄 아냐?” 하고 톡 쏘아 주고 싶지만, 하고 싶은대로 못해 화가 난다고 남편에게 하염없는 푸념이다.

그 무렵, 오후 7시의 종합 뉴스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 불어, 이디쉬, 러시아어 등으로 방송되었다. 히브리어로 제작된 영화에는 영어와 불어 때로는 아랍어 자막을 함께 넣는다. 이스라엘의 공식 통용어는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이다. 교통 표지판이나 공공건물의 기관명이 이 세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 당한 “유대 사람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는 십자가 명패도 “히브리 말과 라틴 말과 그리스 말로 적혀 있었다”(요 19:20).


히브리어를 재생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의 초상성서 히브리어와 현대 히브리어 사이에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느냐고 묻는 이들이 가끔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차이가 옛 우리말과 오늘의 우리말 사이의 차이만큼 크지는 않다. 현대 히브리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줄곧 사용되면서 발전된 언어가 아니라 겨우 한 세기 이전부터 성서 히브리어와 랍비 히브리어를 새롭게 재생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2천여 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던 언어를 다시 되살려 쓰기 시작해서 그것을 신생 이스라엘 국가의 국어로 쓰게 되기까지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많았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엘리에젤 벤 예후다(Eliezer Ben Yehuda,1858-1922)라는 이름의 한 유대인 학생은, 흩어진 민족이 한 데 모이고 다시 나라를 세워 독립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언어가 있어야 하며, 그 언어는 조상들이 사용했고 예언자들의 입김이 서려 있는 히브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흩어져 살던 많은 유대인들이 잃어버렸던 조국의 땅을 찾아왔다. 시온주의(찌오누트) 운동, 곧 유대인은 유대 땅에서 자유인이 되어 살자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독립되기 이전부터, 신생 이스라엘 국가의 국어를 무엇으로 해야 할 것이냐는 문제로 시온주의 운동 자체 내에서도 격론을 거듭했다. 

시온주의 운동의 창시자였던 헤르첼(Herzel)의 견해는, 새로 탄생할 이스라엘 국가의 국어로 영어, 독일어, 불어를 함께 쓰겠다(multi-lingular)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의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온 엘리에젤 벤 예후다의 견해는, 옛 조상이 쓰던 성서 히브리어와 랍비문학의 히브리어를 다시 재생시켜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엘리에젤 벤 예후다의 뜻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히브리어가 싫어서라기보다는 배우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왼쪽부터 고서체, 정방형체, 현대필기체, 음역, 수치  

죽은 히브리어를 다시 재생시켜 사용한다는 것도 어려웠지만, 자연과학, 기계공학, 경제, 정치, 사회, 군사 등 각 분야에서 당시까지 쓰여지고 있던 그 수많은 현대 용어들을 히브리어로 새로 만든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 큰 반발은 정통파 유대인들에게서 나왔다. 이디쉬만을 쓰는 정통파 유대인들은 지금도 현대 히브리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거룩한 히브리어, 곧 하나님께 기도할 때만 사용할 수 있고, 성서 읽을 때만 사용이 허락되는 신성한 언어를 생활 용어로 쓴다는 것부터가 신성모독이라는 것이 그들의 고집스런 입장이다. 

어느 누구의 적극적 지지도 없는 상황에서 엘리에젤 벤 예후다는 먼저 자기 가정에서 새 히브리어의 사용을 시도해 보았다. 첫 아들 벤찌욘(Ben Zion)을 얻었을 때 그는 그 아기에게 히브리어만 듣게 하고 히브리어만 말하게 했다. 그의 아내는 2천 년만에 처음으로 아가에게 히브리말을 한 히브리 어머니가 되었고, 그 아들 역시 2천 년만에 처음으로 히브리어로 울고, 듣고, 말하고, 꿈꾼 첫 히브리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외로웠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엘리에젤 벤 예후다는 동네 아이들에게도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마침 한 키브츠(이민 온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농장)에서 자기 아이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달라고 제의해 왔다.

그리고 히브리어 재생운동을 해외에서 전해들은 유대인 젊은이들이 엘리에젤 벤 예후예다에게로 모여 들여 언어 전쟁에 참전했다. 히브리어는 자라나는 어린이들 사이에서 터진 봇물처럼 퍼져 나갔다. 가정에서 마을로, 한 키브츠에서 다른 키브츠로. 이제 어린이들은 거리에서도 히브리어로 말하면서 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새 단어와 표현들을 지어냈다. 동사에서 명사가, 명사에서 복합 명사가, 그리고 의성어, 의태어가 어린이들의 입을 통해서 놀랍게도 툭툭 튀어 나와 새 낱말이 되었다. 어린이들의 이와 같은 슬기와 창조력은 어른들의 기우를 말끔하게 씻어 주었다. 어른들은 자기들의 고집을 꺾었다. 어린이들이 쓰고 만들어 내는 새 히브리어를 새 나라의 나랏말로 쓰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엘리에젤 벤 예후다는 자기 생전에 히브리어가 이스라엘 방방곡곡에서 나랏말로 쓰이는 것을 보았다. 그의 아내는 생전에 히브리어 대사전 전 16권1)이 출판되는 것을 보았다.


한 가정에서 시작된 히브리어 국어화 운동이 반세기가 채 못 되어 그 결실을 거두었다는 것은 한 가정의 피 맺힌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실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새롭게 재생된 언어이기 때문에 히브리어는 발달된 다른 언어에 비해 그 문법이 단순하다. 한 가지 표현으로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초보 단계에서는 배우기가 쉽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글로는 구별이 되지 않는 ‘라메드’(영어의 L에 가까움)와 ‘레쉬’(영어의 R에 가까움)의 구별이 어려웠던 나로서는 그 때문에 유학 초기에 실수도 무척 많이 했다. 그런 실수들 가운데 한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스라엘에는 식빵 값이 쌌다. 정확한 비율은 기억나지 않으나 정부가 업자에게 식빵 값의 얼마를 대주고 소비자인 국민이 약간을 부담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식당에서나 식빵에 대한 값은 받지 않았다. 한번은 쯔비 라고 하는 이스라엘 친구와 같이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하게 되었다. 식탁에 놓여진 빵이 좀 모자라서 나는 여종업원을 불렀다. “빵(lekem) 좀 더 주세요”라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이걸 어쩌나! ‘라메드’와 ‘레쉬’의 발음을 제대로 구별할 줄 모르던 내가 “빵 좀 주세요”라고 한 말이 그만 그 이스라엘 아가씨의 귀에는 상상 외로 “자궁(rekem) 좀 주세요”로 들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 그때까지 나는 rekem의 뜻을 몰랐었다.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가 배꼽을 쥐고 웃으며, 내 등을 치면서 하는 말이, 이스라엘에서 lekem은 공짜이지만 rekem은 너무 비싸단다. 나의 사정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며 돌아간 그 아가씨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 해보니 뺨맞지 않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천만 다행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 표현에서 우리는 그들의 독특한 의식구조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땅, 집, 이름, 벽 등이 그 좋은 예들이다. 달리 어떤 설명이 없는 한, 단순히 “땅(하아레츠)”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이스라엘 땅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으뜸이 되는 땅은 곧 이스라엘 땅(에레츠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집(바이트)”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예루살렘 성전(베트 함미크다쉬)을 일컫는 말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집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집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책의 으뜸은 성서이다. 구태여 거룩한 책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읽는 것(미크라)”이나 “책(핫쎄페르)”이라고만 해도 그것이 성서를 가리키는 것인 줄 다 안다. 읽을 것이라고는 성서뿐이라는 생각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으뜸이 되는 이름은 물어 볼 것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 넉 자(YHWH)이다. 자음으로만 써 놓고 거룩하다 하여 발음하지 않다가 그만 오늘날 그 이름의 발음마저 잊어버린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의 본래의 발음이 아니다. YHWH를 ‘나의 주(아도니아)’라고 불러 오고 있으니, ‘아도나이’에서 모음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이름 네 글자 YHWH에 붙여 편의상 읽어본 발음이 ‘여호와’이다. ‘야웨’나 ‘야훼’가 본래의 발음에 가깝다는 것이 지금까지 연구 결과이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일부 기독교인들이나 부르는 이름이지, 구약성서에서나 옛 유대교 회당에서나 예수님의 경우에나 신약성서에서나 사도들의 경우에나 오늘날 세계의 교회들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성서를 읽다가 하나님의 이름 넉자가 나오면 “나의 주”(아도나이)라고 읽던가, 단지 “이름”(핫?)이라고만 읽는다. “이름”(핫?)하면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름 앞에 다른 이름들은 이름도 들여 밀 수 없다는 식이다. 벽(壁) 중의 벽은 지금 그 일부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서쪽 벽(학코텔 함마아라비)이나 그냥 “벽”(하코텔)이라고 한다.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에게는 성전만큼이나 소중한 장소이다. 그래서 민족 전체의 기념 행사는 지금도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이 서쪽 벽 앞 광장에서 거행된다.

 


1) Completed Dictionary of Ancient and Modern Hebrew, 16 volu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