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한국의 매스ㆍ컴뮤니케이슌에 미친 영향과 그 역할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매스ㆍ메디아의 하나인 신문을 비롯하여 잡지등이 일찍부터 기독교 계통에서 나타나 한국의 언론계를 이끌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신문, 잡지등에 앞서서 성경을 한국말로 번역 출판하여 한민족에게 기독교 사상을 직접 읽고 체득케 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민주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경이 처음으로 한국말로 번역 출판된 것은 물론 한국내에서가 아니고 만주의 심양(瀋陽)과 일본의 요꼬하마(橫濱)이기는 하였으나 이에는 우리 한국인이 참예하여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점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전자는 영국의 선교사인 짠ㆍ로쓰(John Ross)와 짠ㆍ매킨타이어(John Mcintyre)가 평안도 출신의 이응찬(李應贊), 서상륜(徐相崙)등이 1882년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출판하였고 후자는 동경의 미국 성서공회총무인 헨리ㆍ루미쓰(Henery Loomis)가 서울출신의 이수정(李樹庭)과 함께 번역한 한국말 「마가복음」이 1884년 초에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한국말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획기적인 사실이라 할 것이며, 둘째로서는 이것이 우리 한국인의 손에 의하여 이룩되었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을 크게 평가해야 될 것이다. 셋째로 들어야 할 것은 한국말로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기독교가 한국 땅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사실은 기독교가 한국인 가슴속 깊이 파고드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기독교가 한국에 뿌리를 박은 지 75년 되는 오늘날 동양에서 손꼽는 기독교국가가 되었다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 실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굳건한 발판이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한국에서 전파되기 이전에 이미 한국말 성경을 마련하였고 또 전파하는데 있어서 이 한국말 성서가 유일한 쟁기가 되었다. 성경의 한국말 번역은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그 자체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공헌을 끼쳤으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민족의 문화를 향상시키는데 다시없는 좋은 길을 터놓았다는 점이었다. 한국민족은 일찍부터 고유의 문자인 한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대주의에 사로잡혔던 한국의 역대 지식계급과 권력층에서는 민족 고유의 한글을 멸시하고 천대하여 이를 쓰는 것을 수치로 알고 거부하였다. 그것도 실로 수 백년 동안을 두고 계속적으로 한글을 천대하여 거부하여 내려 왔다. 이로 말미암아 식자계급이란 중국의 한문(漢文)만을 숭상하여 일절 한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 고유의 글자인 한글은 있으나 없으나의 존재밖에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일반 국민대중은 어려운 한문과 동떨어졌음을 물론이요 또한 알려주지 않는 한글과도 자연 인연이 멀어졌다.
이러한 때 기독교가 성경을 한국말로 정확히 기록할 수 있는 민족고유의 한글로서 번역하여 이를 간행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가 당시 한국의 권력층과 지식층에 대한 커다란 도전행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수 백년 동안 글 특히 민족고유의 글자인 한글과 동떨어져 있던 일반 국민대중에게 있어서는 다시없는 일대 빛이요, 기쁨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일찍이 1447년 10월 9일 한글을 제정하여 널리 반포한 세종대왕(世宗大王)이래 처음되는 획기적인 사실이라 하겠다. 한글로서의 한국말 성경이 나타남으로해서 한국의 국민대중들은 비로소 자기(自我)를 다시 찾게 되었고 사대주의를 버리고 자립사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한국의 루네쌍스이었다.
이로써 이제까지 일자무식의 까막눈이라 천대받던 일반 국민대중들도 네활개를 치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고 또한 버젓이 내 글을 알고 읽을 줄 아는 활기 띤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의 두 눈은 비로소 희망으로 반짝이게 되었고 진리 탐구의 발판을 갖추게 되었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의 출현은 이처럼 한국의 문화를 대중화시키는 데 절대적인 길라잡이가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