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기사(記事)가 작품전체의 소재가 되거나 부분적인 소재가 되거나를 막론하고, 성서에서 취재한 작품으로서는 김동리(金東里)의 「사반의 十字架」「마리아의 懷胎」「木工요셉」, 강소천(姜小泉)의 「山羊」, 송기동(宋起東)의 「回歸線」, 박용숙(朴容淑)의 「附錄」등이 있다.
첫째, 김동리의 「사반의 十字架」는 예수 당시(특히 예수의 전도기간에 해당하는 약 三년간)의 유대나라를 배경으로 설정하고, 예수와, 예수의 왼편 십자가에서 「강도」란 죄목으로 처형된 사반의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전개시킨 작품이다. 그래서 보다 중점적인 주인공인 사반과 직접으로 관련된 사건에 비하여 양적(量的)인 비중은 덜하지만 예수의 중요한 행적만은 대부분이 취급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예수의 초자연성(超自然性)을 그대로 시인(是認)하고 있는 점이다.
바로 그때였다. 들것에 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의 장정이 있었으나 뜰에 가득찬 그 많은 군중들을 헤치고 예수가 앉아 있는 방까지는 도저히 들어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들 것을 메고 도루 나가더니, 담장 밖을 돌아서 집 뒤의 언덕바지로 올라갔다. 집 뒤가 약간 언덕바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는 쉽사리 지붕에 올라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둘씩 나누어 들것을 지붕 위로 메어 올린 뒤 호미로 지붕의 흙(다져진)과 갈대를 걷고, 들것에 줄을 매어서 병자를 달아 내루었다. 지붕이 걷어지고 거시서 중풍병환자가 들것에 담긴 채 방바닥으로 내려온 것이다. 뜰에 있던 군중들이 먼저 「와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도 자리를 옮겨 앉았다. 지붕에서는 줄을 달아 내린 장정 둘이 방안을 내려다보며 「우리 조카올시더. 좀 고쳐 주이소」 「중풍병입니더. 좀 고쳐 주이소.」 하고 예수를 향해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중략- 한참동안 병자의 놀란 듯한 휘둥글한 두 눈을 바라보고 있던 예수는. 그 투명한 목소리로「아들아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했다. -중략-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마음속으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예수는 어느듯 그들의 맘속을 들여다보았는지, 「임자들이 어찌 맘속으로 그것을 생각하느뇨? 내가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과 어느 것이 쉽겠는고?」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중략- 그들에게서 대답이 없는 것을 보자 예수는 다시 중풍병자를 지긋이 노려보며, 「내가 네게 일으노니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했다. 순간 병자의 두 눈에서 불꽃이 한번 번쩍하며, 왼쪽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조금 뒤, 그는 들것에서 일어났다.
「사반의 十字架」에서 예수의 이적을 이렇게 묘사한 작자는 다시 <사라믕로서는 할 수 없는, 자연이상-초자연(超自然)-의 일은 곧 여호와의 권능에 속하는 일>이라고 덧부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작자가 후기(後記)에서 말한대로 <공적(公的) 활동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공적기록(公的記錄)에 의거하기로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되는 것은 누구보다도 소설에 있어서의 사실성(寫實性)을 중시(重視)하는 이 작가가 어째서 그것(사실성)을 의식적으로 무시했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상 이 작가는 소설적인 리얼리티를 무시하면서까지 예수의 초자연성(超自然性)을 받아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하여 상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신앙의 소치(所致)거나 아니면 예수를 인간적으로 취급할 것을 꺼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상 두 가지 이유는 모두 논리적 타당성을 결(缺)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제상의 의욕을 전연 도외시(度外視)한 피상적(皮相的)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작품 전체의 테마(主題)를 분석하는데서부터 그 해답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졸고(拙稿) 「하늘과 땅의 辯證法」에서 이미 논급(論及)한 바 있기에 그것을 여기에 인용한다.
……이로써 우리는 「사반」의 윤리가 다분히 이교적(異敎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가 <하늘(神)에 근원을 두는 사상>을 상징하듯이 「사반」이 <땅(人間)에 근원을 두는 사상>을 상징한다는 것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전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헤브라이즘」을 계승한 기독교의 신본주의(神本主義) 또는 신중심주의를 의미하며, 후자는 「헬레니즘」에서 시작되어 「루네쌍스」에 이르러 명확한 형태로 구현(具現)된 「휴매니즘」의 인간 중심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전자는 <초자연성>과 <비합리성>과 <초월성>과 <피안주의(彼岸主義)>를 그 특징으로 하는 대신 후자는 <자연성>과 <합리성>과 내재성(內在性)>과 <차안주의(此岸主義)>를 그 특징으로 한다. 이렇게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기독교와 휴매니즘을 「예수」와 「사반」을 통하여 각기 가장 원형적(原型的)인 형식으로 집약(集約)시키고, 그 두 개의 전형(典型)을 정면으로 대결시킨 것이 이 「사반의 十字架」다.
이상에서 지적한 테마상의 설정만 파악하게 된다면 작가가 소설적인 리얼리티를 무시하면서까지 예수의 초자연성을 그대로 도입(導入)해온 이유는 스스로 밝혀지리라고 믿는다. 즉 초자연성을 시인해서라기 보다도 「하늘」이라는 개념으로 포괄(包括)되는 <초자연성>과 <비합리성>과 <초월성>등을 상징적(象徵的)으로 형상화시키려는데 기인한 것임을-.
김동리의 작품으로서 성서기사(聖書記事)에서 취재한 것으로는 이밖에도 「마리아의 懷胎」나 「木工요셉」등이 있다. 「마리아의 懷胎」는 성서적 사실을 소재로 하여 시적정감(詩的情感)이 깃든 필치로 다루므로써 신비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성공한 작품이었고 「木工요셉」은 예수의 초상식적(超常識的)인 행동에 대한 인간 요셉의 아바지로서의 세속적인 고민을 그린 작품이다. 전자(前者)에서는 이 작가의 신비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읽을 수가 있고, 후자에서는 인간주의적인 관시을 감득할 수 있으나, 그것들은 아마도 「사반의 十字架」를 쓰기 위한 예비적 시도(試圖)였다고 보여진다. 즉 예수와 관련된 일련(一連)의 초자연성을 작품상으로 처리하기 위한 시작(試作)이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김동리가 소설 속에 초자연성을 그대로 도입(導入)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를 「인간」으로서만 포착하려던 자연주의 작가들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그 대담한 노작(勞作)에 대하여 경의를 표해도 좋을 것이다.
그 다음 강소천의 「山羊」은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사적(史績)중에서 특히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신앙적인 장면을 취급한 작품이다. 아브라함의 심리적 갈등(葛藤)을 좀더 투철하고 예리하게 다루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 담담학 간결한 묘사는 상당한 설득력(說得力)이 있어 퍽 감명 깊은 인상을 준다. 만일 성서 사적을 전부 이렇게 소설화시켰으면 그 감화력이 배가(倍加)되리라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는 하나의 표본이기도 하다.
셋째로 송기동의 「回歸線」. 이 소설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전후하여 일어난 사건을 취급했으면서도 성서적 사실을 번복(飜覆)시키고 있기 때문에 발표직후에 많은 물의(物議)를 일으킨 바 있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제三장 성서적 진리를 의곡(歪曲)한 작품들」에서 별도로 취급하기로 학 여기서는 제외한다.
마직막으로 신진작가 박용숙의 「附錄」을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이 작품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던 구레네 시몬을 다룬 것이다.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으면서도 예수의 거륵한 고난에 동참(同參)하는 특권을 얻은 시몬을 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착상(着想)이 좋았다고 본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예수를 줄곧 저주하는 것이라든지, 나중에 십자가를 진 수고의 대가로 은화 한 개를 받아들고 술집에 들어가 만취가 되어나오게 하는 것등은 그 사건처리가 너무 자의적(恣意的)인 것 같은 감을 준다. 그것은 물론 시몬의 행위가 어디까지나 무의식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라고는 생각되지만 그러나 시몬은 그 뒤 자기의 두 아들이 모두 교회의 유력자였다는 사실을 미루어 신앙의 길을 들었으리라고 보는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와는 너무 동떨어진 처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러면서도 위대한 역사에 참여했다는 테마상의 관점에서만 보드래도 그러한 사건처리는 구성상의 배려(配慮)가 소홀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성서의 기사를 직접 소재로 취급한 작품은 이 밖에도 방금 「現代文學」지에 연재가 시작된 김말봉의 「이브의 後裔」가 있으나 그것은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니므로 이 정도로 한정하기로 하고, 끝으로 성서의 사적을 대상으로 소설화하는 경우에 유의할 점에 대한 사견(私見)을 덧부쳐 놓는다.
첫째, 명백한 성서적 사실만은 어디까지나 존중하여 근거없이 번복하거나 조작(造作)하지 않을 것을 원칙으로 할 것. 둘째, 상상(想像)은 응분(應分)의 개연성(蓋然性)을 전제로 할 것. 셋째,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성서적 사적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각도에서 주제성(主題性)을 부여할 것.(그래야 문학작품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될터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