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의 「巫女圖」
김동리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巫女圖」는 기독교적인 테마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중인물의 하나인 무녀(巫女)「모화」의 아들「욱이」가 독실한 예수교인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인 「모화」로 대표되는 한국적 샤마니즘과 정면으로 대결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어마니, 그런 것은 하나님께 죄가 됩네다. 어마니 이것 보시오. 마태복음 제구장 삼십오절이 올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다려 오매, 사귀가 쫓겨 나가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그러나 이때 벌써 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구석에 언제나 채려 놓는 「신위상」앞에 가서, ……중략…… 그는 주문이 끝나자 「신위상」위의 그릇을 들고 냉수를 입으로 먹음어 욱이의 잧과 온 몸에 뿜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중략……」
이런 살벌한 충돌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모화는 욱이가 자는 틈을 타서 굿을 벌린다. 그리고 「신약전서」를 태워버리고, 욱이마저 칼로 찌른다. 욱이는 얼마 뒤에 줄어간다. 그대신 이 마을에는 예수교가 들어와 불 일 듯 전파되었다. 그러자 무녀 모화에게 찾아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모화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모화는 늪가에서 마지막 굿을 벌렸다. 모화는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늪 속으로 기어들었다. 그리고 아주 잠겨버린 것이다. 그것은 예수교의 세력 앞에 소멸해가는 샤마니즘의 처절한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巫女圖」 그러한 의미에서 이 땅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던 무렵의 정상(情狀)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다.
유재완(劉載完)의 「엘리의 後孫」
이 작품은 기독교적인 테마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설정상의 방법을 구약에 나오는 엘리의 이야기에서 도입해왔다는 점에서 성서에서 받은 일종의 영향으로 간주될 수는 있다. 즉 이 작품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이북에서는 빨갱이가 된 큰아들한테 남한에 나와서는 불량배가 된 작은 아들한테서 각각 화를 입는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의 현실적 비극의 일단면(一斷面)을 그린 것인데 이것은 엘리와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한국의 실정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재현(再現)시킨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사건설정도 그렇지만 제목이나. 작품의 서두에 인용한 <엘리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도 영영히 속하지 못하리라>고 한 성서의 구절도 작자의 그런 의식적인 방법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담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현대적인 사건을 통해서 재현시킨 학슬리의 「에덴의 東쪽」이나 예수와 그 열 두 제자의 최후를 역시 현대적인 사건을 통해서 재현시킨 포크너의 「寓話」등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 수법과 일맥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성서적 사실을 간접적으로 재현시키는 수법상의 개척도 앞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