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영어번역 성서는 「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이다(1382년). 이것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the complete Bible)이다. 영국에 기독교가 들어간 지 실로 천여 년 만에 번역되어 나왔다. 위클리프(John Wyclif)가 번역했기 때문에 「위클리프역」이라고 한다. 그는 일반 신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성서를 번역하였다. 그를 일컬어 종교개혁의 새벽별(the morning star of the Reformation)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을 맡았으나 후에 추방되었다. 위클리프는 1380년에 신약을 번역해 내었고, 구약까지 완역된 것은 1382년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완역 영어 성서이다. 그러나 아직 이것은 인쇄된 성서가 아니고 손으로 쓴 성서이다. 위클리프는 1384년에 죽는다. 그런데 44년 후인 1428년에 그가 성서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교회는 그의 묘를 파헤치고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에 처한다.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서는 나온 지 33년 밖에 안되어 1415년에 불태워지고 만다. 당시 교회는 신도들이 성서 읽는 것을 금했다.
틴들(William Tyndale)은 먼저 신약번역에 착수하여 1525년 콜론(Cologn)에서 그것을 인쇄하여 4절판(a quarto edition)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영어번역 신약 인쇄본(first printed English New Testament)이다. 그는 보름즈(Worms)로 쫓겨 간 다음에 거기서는 신약을 8절판(an octavo edition)으로 출판하여 3천 부를 몰래 영국으로 들여 보낸다. 일반 신도들은 그것을 읽으려고 사고, 워햄(Warham) 대감독은 불태워 버리려고 그것을 사들였다. 신약번역을 마친 틴들은 곧바로 구약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번역을 완료하지 못한다. 드디어 1536년 10월 6일 틴들은 화형을 당한다. 처형을 받으면서, 그는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성서(King James Version)」의 80퍼센트가 틴들의 문체라고 한다. 그의 평생의 목표는 평신도들에게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1535년 10월에 나온 최초로 "인쇄된" 영어 신·구약 성서(the first complete English Bible in Print)이다. 번역자 마일즈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은 함부르크에서 틴들을 알게되었다. 그의 번역은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다. 취리히였으리라고 짐작된다. 그것을 헨리8세에게 봉헌한다. 그는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성서를 번역했다. 틴들의 신약과 오경도 참고하였다고 한다. 「카버데일역」은 틴들의 번역에 크게 의존하면서 아직 틴들이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거듭 번역하여 완성시켰다.
이것은 「틴들역」의 또 다른 교정판이다.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 것이다. 1537년 안트워프(Antwerp)에서 인쇄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카버데일이 맡아서 펴낸 것으로, 위에 언급한 「틴들-토마스 매튜역본」(1537)의 재교정판이다. 이것을 「큰 성서」라고 하는 까닭은 그 크기가 가로 9인치, 세로 15인치로 유난히 컸기 때문이다. 1539년에 완성되어 성직자들에게 배포된다.
제네바는 신학학자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와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의 고향이다. 칼빈의 동서 윌리엄 위팅햄(William Whittingham)이 존 녹스(John Knox)에 이어 제네바 영국교회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제네바 성서」 발행에 있어서 공헌이 컸던 인물이다. 이 성서가 나오기까지 위팅햄을 도왔던 인물이 바로 1553년까지 「카버데일역」을 냈던 카버데일이다. 「제네바 성서」 「큰 성서」(1539)의 교정판이다. 틴들의 공헌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은 히브리어 본문과 라틴역 본문에 따라 철저히 교정된 것이다. 신약은 주로 「틴들역」의 교정이다. 이 성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봉헌된다. 엘리자베스는 1558년에 즉위하였고, 개신교 편을 강하게 들던 왕이었다. 「제네바 성서」가 당시 교회에서 「큰 성서」를 대신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는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감독성서」(1568)가 나올 때까지 이 두 성서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제임스왕역(KJV)」(1611)이 나올 때까지 「제네바 성서」는 140여 회나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되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장군과 그의 군대가 바로 이 성서를 읽었고,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 북아메리카로 간 필그림 조상들과 존 번연, 세익스피어 심지어는 「제임스왕역」(1611)을 낸 제임스왕도 바로 이 「제네바 성서」를 읽었다. 「제네바 성서」의 신약은 1557년에 나온다. 신·구약 전서가 다 번역되어 나온 것은 1560년이다. 이것이 로마자로 인쇄되고 절 구분이 된 최초의 영어 성서인 「제네바 성서」 초판이다.
교인들 사이에서는 「제네바 성서」(1560)가 읽히고, 교회의 강단에서는 「큰 성서」(1539)가 읽히고 있었다. 「제네바 성서」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던 대감독 파커(Archbishop Parker)는 「큰 성서」를 교정하여 이것으로 기존의 두 번역 성서를 대치하고자 했다. 교정 작업에 대거 참석했던 이들이 감독들이었으므로 이것을「감독성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약 본문은 「제네바 성서」 그대로이고, 신약 본문은 파커 대감독 자신이 많이 교정하였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쪽에서 번역해 낸 일상어로 된 번역이다. 프랑스의 랭스(Reims) 지방의 알렌 추기경이 시작하였고, 본격적 작업은 듀아이(Douai) 대학의 히브리어 교수였던 그레고리 마틴(Gregory Martin)이 맡아서 하였다. 신약이 1582년에 나왔고, 구약도 곧 이어 완역되었으나 출판 비용이 없어서 지연되다가 대학이 라임에서 듀아이로 옮긴 다음에 1609/10년에야 출판되었다. 그래서 신약은 랭스 신약으로 알려졌으나, 신·구약 전서는 듀아이 성서로 불린다. 라틴어 불가타에서 번역되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한 번역이다.
엘리자베스의 오랜 통치가 1603년에 끝난다.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에,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이 크게 진전되었다. 1604년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등극한다. 즉위하던 첫 해에 그는 원전에 근거한 새로운 성서 번역을 지시한다. 1604년 6월 30일에 제임스왕은 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 번역에 참여하게 했다. 현존하는 기록에는 실제로 번역에 참여한 학자가 49명으로 나오고 있다.
번역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611년 에 이 번역이 완성되었다. 칠십인역 이후 두번째로 왕의 지원으로 번역된 성서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틴들과 카버데일 번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라틴역본, 랭스 신약, 루터의 독일어역 성서의 영향도 받고 있다. 비록 왕의 후원으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했다. 거의 40여 년 동안이나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다. 또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때 사용된 원본이 오늘날에 와서 볼 때 그렇게 좋은 사본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1611년에 나온 이래, 1615년, 1629년, 1638년, 1654년, 1701년, 1762년(케임브리지 성서), 1769년(옥스퍼드 성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이것은 「제임스왕 역본」의 본격적 개정작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임스왕 역본의 신약이 대본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은 아주 빈약한 것이었고, 그 후 새로운 권위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므로 개역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1870년에 개역에 착수한 이래, 신약 개역이 나온 것이 1881년이다. 영국에서는 그 해 5월 17일에, 미국에서는 3일 후에 같은 신약을 출판하였다. 제임스왕 역본에서 거의 3만여 곳을 고쳤다. 그 중에 5천여 곳은 제임스왕 역본이 사용한 사본과 영어 개역 성서가 사용한 사본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이 나온 것은 1885년이었다. 신약에 비해 개정 범위가 좁았다.
「영어 개역 성서」가 「제임스왕 역본」의 영국 개정판이라면, 「미국 표준역 성서」는 미국 개정판이다. 1900년에 신약이 나오고, 1901년에 구약과 함께 성서가 나온다. 이 때 외경은 제외된다. 영국식 영어 표현들이 미국식 영어 표현으로 바뀌는 것도 이 때였다.
이것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의 개정판이다. 1611년에 「제임스왕 역본」이 나왔고, 그것을 영국에서 개정한 것이 「영어 개역성서」(1881/85)이고, 「영어 개역 성서」를 미국에서 다시 개정한 것이 「미국 개역 표준 성서」(1946/1952)이다. 20여 개 대학과 신학교에 적을 둔 32명의 성서학자들이 작업을 맡아 하였으며, 그 중에는 유대인 학자도 한 사람 끼어 있었다. 1957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 외경도 번역되어 나왔다. 이것은 성서 번역에서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를 반영시킨 최초의 번역이기도 하다.
영어권에 살던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제임스왕 역본」과 「영어 개역」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유대교인들로서는 기독교 쪽에서 번역한 이런 성서들을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히브리어 본문 전승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구약 본문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번역, 구약의 몇몇 절들에 대한 기독교 쪽의 기독론적인 해석들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리하여 미국에 있는 유대교 출판협회가 1955년에 유대교 학자들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여, 율법서(1962)와 예언서(1978)와 성문서(1982)를 출판하였고, 1985년에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기존 번역의 개정이 아닌, 철저한 새 번역이고, 영국식 영어 번역이다. 전통적인 "성서 영어(biblical English)"가 사라진 번역이다. 1946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961년에 신약을 출판하였고, 1970년에 구약을 출판하였다. 1970년판 성서에 합본되어 나온 신약은 1961년판의 개정이다. 1970년에 완역되어 나온 성서는 일주일 만에 3만 3천 부가 매진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쪽에서는 20세기 전반부까지는 「듀아이-랭스 성서(Douai-Reims Bible)」(1582/1610)를 사용하였으나, 중세기 후반부터는 독자적 번역을 갖게 되었다. 로날드 녹스(Ronald Knox) 번역의 신약이 1945년에, 구약이 1949년에 나왔고, 195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36년에 기독교 교리협회(the Confratermity of Christian Doctrine)에서 새 번역 계획을 세웠다. 라틴어 불가타역을 대본으로 신약을 번역하였다(1941). 그러나 1943년에 폰티피칼 성서위원회(the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가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 성서를 대본으로 한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여, 협회번역(Confraternity Version)이 나오게 된다(1952/61). 이것이 나중에 「새 미국 성서(the New American Bible)」가 된다. 구어체 성격의 또 다른 번역인 「예루살렘성서(the Jerusalem Bible)」(1966)는 프랑스어판 「예루살렘성서(La Bible de Jerusalem)」(1956)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달리 「복음성서(Good News Bible)」라고도 한다. 미국성서공회가 구어체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원칙으로는 전통적인 형식일치의 문자적 번역을 피하고, 내용일치의 의역을 시도하였다. 1966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6년에 구약이 나왔으며, 1979년 외경이 번역되어 나왔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의 개혁교회가 연합하여 번역한 것이다. 1973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8년에 구약이 나왔다. 발행자와 판권 소유자는 뉴욕 국제성서공회(New York International Bible Society)로 되어 있다. 전통적 어법과 표현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본문비평의 결과를 번역에 많이 반영시킨 것이 특징이다. 구약에는 특히, 사무엘기상·하와 이사야서 등에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역」을 현대화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미국 개역 표준역」(1946/1951)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74년에 개정 작업이 시작되어 1989년에 출판되었다. 3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개정위원회에는 가톨릭 학자 6명과 동방정교회 소속 학자와 유대교 학자도 각각 1명씩 있었다. 구약의 경우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이것은 영국에서 나온 「새 영어 성서(the New English Bible」(1970)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89년에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