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서공회가 「개역개정」성경(이후 개정판)을 낸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교회들이 이 성경을 예배 때 사용하지 않고 있고, 교인들도 개정 성경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 담임목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정」성경을 교인들에게 권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한국교회인지라 60년 동안 모든 교회들이 사용하여 왔던 「개역」성경을 버리고 개정된 성경을 채택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일수록 더 정확하게 더 분명하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개역」성경의 잘못된 번역이나 어려운 용어를 7만 2천 7백여 군데나 고친 「개정」성경이 마땅히 한국교회의 공적 성경으로 받아져야 할 것이다.
안동교회는 1998년 「개정판」 성경이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하여 교인들에게 보급하였고, 교회 비치용 성경을 모두 「개정판」으로 대체하였다. 「개정판」으로 성경을 대체하는 데 특별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목사가 당회에 제안을 하였고, 당회는 즉시 가결하여 바로 사용에 들어갔다. 그간 「개역」성경의 문제점들을 잘 알면서도 예배 때에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개정판」 이전에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성경이 나왔지만, 그것을 바로 예배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개역」성경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면서 어려운 용어를 비롯하여 잘못 번역된 것을 바로 잡은 「개정」성경이 나오자 바로 대체하였다. 언제나 과거의 잘못된 교회의 관습 등을 다른 어느 교회보다 앞장 서서 개혁하여 온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개역」성경을 「개정」성경으로 바꾸는 데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바로 시행하였다.
「개역」성경을 개정하는 원칙이 ① 바른 번역으로 ② 쉬운 말로 ④ 표준맞춤법으로 ⑤ 명확한 뜻으로 ⑥ 차별없는 말로 한다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원칙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개정이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이기 때문에 「개정」판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인들에게 이를 널리 알리고 적극적으로 대체하도록 권장하였다. 그래서 「개정」판 성경을 다량으로 사다가 교인들에게 구입하도록 하므로 초기에 대부분 「개정」판 성경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안동교회에서는 주일예배 때 안수집사와 권사가 등단하여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각각 낭독하는데 「개정」성경으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 때나 수요성경공부 때도 모두 「개정」성경으로 통일을 하였기 때문에 교인들이 대부분 「개정」성경을 가지고 다니거나 교회에 비치된 「개정」성경을 이용하였다.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개역」성경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과 한자로 된 단어만을 골라내고, 그것을 「표준새번역」 성경과 그리고 영어 NIV 성경과 대조하여 놓은 <개역성경 용어 해설서>라는 간단한 유인물을 만들어 몇 사람에게 나눈 일이 있다. 목사로서 평생을 성경을 가까이 한 나도 놀랄 정도로 어려운 한문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개유’(開喩), ‘건과’(愆過), ‘고빙’(雇聘), ‘번조’(煩燥), ‘빙폐’(聘幣) 등이다. 이런 어려운 용어가 있음에도 성경을 읽을 때 별로 유념하여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무심히 넘겨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개정판」은 이런 어려운 단어들을 모두 이해하기 쉬운 말로 번역을 하였기에 우리 교회는 두 말 않고 「개정판」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안동교회는 「개역개정」성경을 사용하면서 교인들의 반응을 조사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인들은 전과 같이 어려운 단어 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 채 「개정」성경에 적응해 가고 있다.
특히 안동교회는 주기도문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를 수정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기도문은 너무 오랫동안 암송하여 온 기도문이기에 우리 입에 아주 익어 있어서 좀처럼 그것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개정」성경이 나오면서 마태복음 6장에 실린 주기도문 번역을 따르기로 작정을 하고, 교인들에게 광고를 하고 교회에 비치된 찬송가 앞면에 「개역개정」성경의 주기도문을 인쇄하여 붙였다. 안동교회는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 후에 반드시 주기도문을 하는데, 거기에 「개정판」 주기도문을 크게 인쇄하여 붙여 놓았다. 장로님들이 기도한 후 그것을 보고 큰소리로 기도를 하면 회중들이 그것을 따라 갔다. 처음에는 잘 안되었지만, 일년 쯤 지나니까 새로운 주기도문이 입에 익숙하게 되어서 지금은 모두가 다같이 이 새로운 주기도문을 외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교회에 다니다 안동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주기도문이 다른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이상한 교단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개역개정」성경을 새로 마련하면서 전에 사용하던 「개역」성경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가 고민이다. 버릴 수는 없고 집에 쌓아놓자니 먼지만 쌓여 볼썽 사납다. 집집마다 성경이 여러 권이다 보면 차지하는 공간도 만만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책장 높은 곳에 보관하고 있지만, 이리저리 이사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한 두권씩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좋은 대책이 없을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교단 총회나 부활절 연합예배 같은 때 성경봉독을 「개정판」으로 하도록 뜻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정확하게 읽고 전하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대단히 중요한 사명임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할 때 한국교회 일치와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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