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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겨울 통권 제 49권 4호
성경난해구절 - 막 11:12-25 민영진

무화과 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주하셨나?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밖으로 나가더라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장 12~25>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서 무화과를 따서 드시려고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를 찾으시는데 정작 기대하셨던 과일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잎사귀만 무성한 그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니까,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고 만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는 것”이 이상하여 그 까닭을 예수께 여쭈어본다. 그랬더니 예수님 말씀이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대답하시는 것이다(마태 21:18-22). 제자들의 관심이 무화과나무 자체에 있지 않고, 무성한 잎의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말 한 마디에 말라버리는 것, 그러한 능력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이 정도뿐만 아니라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대답하신다. 이까짓 것 나무 하나 말라버리는 것을 보고 뭘 그리 신기하다고 하느냐 하시는 것 같다.

같은 기록이 마가복음서에도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마가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그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때가 “아직 무화과가 열릴 철이 아니었다”고 한 말이 더 첨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받은 그 나무가 말랐다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그리고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마가 11:20-25). “믿음”과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궁금한 것이 있다. 특히 마가복음서에 우리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기록을 읽는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무화과가 결실되는 철을 모르시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은 무화과 열매가 달리기 전, 먼저 잎사귀부터 나서 무성해야 하는 철인데, 그리고 아직은 아무도 무화과에서 그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철인데, 바로 그런 때에 예수께서는 무화과를 딸 수 있을까 기대하시면서 그 무성한 잎을 헤쳐보신 것이다.

둘째는, 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잘 자라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 하는 것이다. 아직 열매 맺힐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맺지 않은 것뿐인데, 그러기에 그 나무가 저주를 받아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 나무를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셨으니 우리로서는 예수님의 행동과 저주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제자들의 태도이다. 예수님께 왜 우리처럼 이런 궁금한 것, 곧 아무런 잘못도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고 여쭙지 않고, 기껏 잎이 무성하게 살아있던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마르게 되었는지, 그것만을 문제 삼았느냐 하는 것이다.

넷째는, “의심하지 않고 믿고 기도할 것, 남을 용서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것, 그러면 이런 놀라운 기적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을 가르치시려고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애매하게 말라서 죽게 하신다는 말인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없다! 마가복음서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마가 11:13)라는 말만 없었어도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열매를 맺어야 할 철에 열매는 안 맺고 잎사귀만 무성한 과일나무라면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양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구만 없어도 예수님이 무화과 철도 모르시는 분이었는가 하는 우리의 의심도 생길 까닭이 없을 것이다.

주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예루살렘 주변의 무화과나무는 일반적으로 3, 4월에 잎이 돋기 시작하여, 열매를 맺는 것은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6월경이다. 무화과 철도 아닌 유월절 기간(3, 4월)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예외적이다. 마가복음서 기자가 “지금이 무화과 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니라는 말이다. 잎이 무성하면 과일을 맺고 있어야 한다.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잎이 무성했다면, 보는 이는 비록 무화과 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잎이 무성하면 으레 거기에는 과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그 나무는 잎만 무성했지 과일이 없었다. 초점은 내실(內實)이 없이 거품만 있는 당시의 이스라엘, 구체적으로는 민족 지도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일종의 비유이다.

본문 전체(마가 11:12-25)를 자체의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마가 11장 20-22절이 무화과나무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마가 11:12-14)는 하나의 “사건”이다. “산을 옮길만한 능력에 대한 약속”(마가 11:20-26)은 “선언”이다. 이 “사건”과 “선언”의 맥락(脈絡)이 중요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곧 처형을 받아 죽게 되신다(15장).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 접근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그 무화과나무를 하나의 실례(實例)로 그리고 하나의 경고(警告)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미칠지를 경고하시는 실례로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오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이란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은 이들이다. 유익한 열매를 맺기보다는 그 민족은 자신의 특권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11:12-18).

무화과나무 저주는 예수님의 사려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교육 방법이었다. 제자들은 이제 곧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일련의 사건이 그들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무화과 저주 사건에 대한 회상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를 통하여 산을 뽑아 바다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용서의 능력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11:25). 예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신비한 능력을 사사로이 사적인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과시하려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능력, 곧 “원수를 향한 자비”의 능력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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