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시리아역 성서는 일명 "페시타(Peshitta: "단순한" 번역)"라고도 알려져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언제 번역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번역은 본래 기원후 1세기경에 번역되었던 것 같고,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아리아베네(Ariabene) 지역에 있던 유대인 사회에서 번역하여 사용했던 것 같다. 페시타는 문체도 다양하고 채택한 번역 방법도 다양하다.

오경 부분은 마소라 본문과 아주 가깝지만, 다른 부분은 칠십인역과 가깝다. 마소라 본문과 가까운 본문은 유대교인들이 번역한 것이고, 칠십인역과 가까운 본문은 기독교 쪽의 개정의 결과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5세기에 시리아 교회가 네스토리우스파(동 시리아)와 야곱파(서 시리아)로나뉘면서 페시타의 본문 역사도 두 갈래로 갈라진다. 네스트리우스 교회는 고립되어 있었으므로 그 교회가 간직하고 있던 사본이 덜 손상되었을 것으로 본다. 6세기 초에 마북(Mabbug)의 감독 필록세노스(Philoxenos)가 칠십인역의 루시아 개정본을 근거로 페시타를 개정하였다. 617년에는 헥사플라에 들어 있는 시리아어역을 텔라(Tella)의 감독 바울이 헥사플라 칠십인역에 근거하여 개정하였다. 지금 단편만 남아 있는 팔레스틴 시리아역은 에뎃사의 야곱(Jacob of Edessa, 708년 사망)이 새롭게 개정한 것이다. 현존하는 페쉬타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42년에 나온 것이다. 완전한 네 벌의 코덱스는 5세기부터 12세기 때의 것이다. 아직 비평적 편집본은 없으나, 국제구약학회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